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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 줄거리, 등장인물의 역사적 배경

by 누키52 2023.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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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 포스터 (출처 : daum 영화)

영화 사도 줄거리

영화 사도는 2015년 9월 16일 개봉작으로 이준익 감독이 만든 상영시간 125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지만 상영시간 내내 가슴 아픈 비극적인 스토리로 러닝타임이 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사도세자가 1762년 7월에 8일 동안 뒤주에 갇혀 죽게 되는 사건인 임오화변을 배경으로 8일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아버지 영조는 왕이 되는 과정에 신하들에게 약점을 잡히기도 했고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면서 더 훌륭한 왕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 왕위에 대한 집착이 매우 심하였으며 신하들의 세력싸움으로 제위 기간 내내 불안함으로 편치 않았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태어나기 전 장남인 효장세자를 잃고 아들이 없다가 42세의 고령에 후궁 영빈 이 씨한테서 사도세자를 낳아 아들에게 직접 책을 만들어줄 정도로 기대와 열정이 가득했습니다. 사도세자 또한 젖먹이 어렸을 때부터 영특함이 남달라 돌이 지나자 바로 세자로 책봉될 정도로 아버지 영조의 사랑과 기대치가 무척 높았습니다. 아기 때부터 학문에 재주가 있음을 보이자 아들을 좋은 왕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더더욱 커졌고 한참 뛰어놀아도 괜찮을 어린아이 일 때 햇빛에 그을린 아들의 피부색도, 잠시 그림을 그리는 모습도 영조의 눈밖에 날 정도로 학문에만 매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들을 자주 혼을 냅니다.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 다정한 눈길 한번, 칭찬 한마디를 기대하면서 노력도 하지만 차갑기만 한 아버지로 인해 때론 엇나간 행동을 하여 더욱 아버지의 눈밖에 나게 됩니다. 사도세자가 성인이 되자 주변 대신들을 떠보기 위해 자주 선위를 얘기하고 대신들과 세자가 선위를 고사하자 대리청정을 제안합니다. 대리청정을 하면서 세자가 잘하고 있어도 더 잘하지 못한다는 질책과 못하면 못한다는 더 엄한 꾸지람으로 신하들 앞에서도 거침없이 세자를 혼냅니다. 본인이 무얼 어찌해도 아버지 마음에 들 수 없음에 세자는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가고 그 와중에 정실 아내 혜경궁 홍 씨와의 사이에서 아들 정조를 얻게 됩니다. 부푼 마음으로 어머니, 아내와 함께 아들을 보여드리러 가지만 아버지의 싸늘한 반응에 사도세자는 또다시 마음을 다치게 됩니다. 영조의 잦은 선위 파동과 선위 파동이 있을 때마다 석고대죄를 드려야 하는 사도세자는 점점 정신이 병들어 가고 상태가 나빠져 내시와 나인들을 살해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가족에게까지 칼을 들이미는 아들의 모습에 영조는 더 큰 실망의 모습과 비난을 드러냅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자라면서 아버지 못지않은 영특함을 보이고 어린 나이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 사이에서 그들의 마음도 헤아리며 왕이 될만한 충분한 자질을 보이는 손주에게 영조의 마음은 더 기울게 됩니다. 세자를 폐하고 왕위를 손주에게 물려주려 대신들에게 세자를 폐하라는 상소를 올리라 하지만 그 누구도 상소를 쓸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왕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영조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점점 더 뼈저리게 알아가는 사도 세자는 아버지 영조를 해치려 마음먹고 찾아가지만 자신의 아들 정조와 영조의 대화를 들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아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칼을 내려놓습니다. 다음날 이를 안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자결하라 하지만 대신들로 인해  자결하지 못하자 영조는 뒤주에 아들을 가두게 됩니다. 세자가 역모죄로 처벌을 받으면 세손 역시 연좌제가 적용되어 영조는 직접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이고자 하고 뒤주에 갇힌 세자 또한 자신이 아들을 위해 그 안에서 죽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7일 차에 영조는 아들과의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숨을 거둔 아들의 모습에 자식을 제 손으로 보낸 아비의 눈물을 흘립니다. 8일 차에 아들의 죽음을 공식화하며 그 이후 1776년 영조의 뒤를 이어 사조세자의 아들 정조가 왕위를 이으며 끝이 납니다. 

역사적 배경

유아인 배우가 연기한 사도세자는 1735년 2월 13일에 태어나 1762년 7월 12일, 27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조선 21대 왕인 영조의 차남입니다. 어머니 영빈 이 씨는 궁녀출신의 영조의 후궁이었고 사도세자의 정실아내 혜경궁 홍 씨와의 사이에 조선 22대 왕인 정조를 낳았습니다.  조선시대는 40대면 손주를 보는 나이였는데 영조는 42세의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이 상당히 총명해 5살부터 받는 세자교육을 3살 때부터 하기 시작했고 학습 능력 또한 좋았다고 합니다. 기대가 커 어린 아들이 감당하기엔 힘들 정도로 질책과 정신적인 학대로 사도세자는 정신병을 얻게 되고 비행과 기행을 일삼아 영조와의 사이가 더 틀어졌다고 합니다. 영유아기부터 학대받고 자란 비운의 왕세자이기도 하지만 여러 이유로 수십~수백 건에 살인을 저지른 것도 사실입니다. 영조는 잦은 선위를 말했었지만 진심으로 선위 할 마음은 없었고 사도세자가 15세 때 선위 대신 하게 된 대리청정으로 사이가 더 멀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조는 본인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사도세자가 더 좋은 쪽으로 바꿔가더라도 자기가 만들어 놓을걸 바꾸는 게 싫다는 이유로 본인의 주장대로 몰아갔고 사도세자의 기를 죽이고 의견을 개진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둘의 성격이 극명히 달라 충돌이 잦았고 사도세자가 죽은 후 세자의 묘 또한 세자의 예에 따르지 않고 돌보는 사람도 없어 보이는 버려진 무덤 꼴이었다고 합니다. 영조의 뒤를 이어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왕이 되고 아버지를 추존하고자 했지만 영조의 반대에 부딪혀 무덤을 옮겨 짓는 정도의 예우만 하고 정조가 원하는 추존은 할 수 없었지만 차차 단계를 거쳐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의 현륭원, 그 일대를 정비하여 수원화성을 축조 하였으나 비명에 간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하는 것은 정조가 죽을 때까지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리뷰

왕관의 무게로 인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가슴 아픈 영화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고 아버지의 기대에 화답하고 싶었던 아들의 절절함이 슬펐고 아들에게 조차 왕이고자 했던 아버지가 조금만 욕심을 내려놓고 아들을 바라봐 줬다면  이리도 가슴 아픈 역사로 기록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자식을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는지,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였고 왕이 아닌 아버지가 필요했던 사도세자가 살아온 삶이 얼마나 공허했을지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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